우생학 1, Eugenics 1
19세기에 발생한 우생학이란 학문이 있다. 이것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실 우생학이란 단어는 19세기에 나왔지만 이러한 생각의 시초는 철학자 플라톤(Platon)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책 『국가』(Politeia, 기원전 374년)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시켜야” 하며,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양육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내다 버려야 하며, 고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린 자와 천성적으로 부패한 자는 죽여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There is a discipline called eugenics that arose in the 19th century. This is the study of various conditions for the purpose of genetically improving mankind. In fact, the word “eugenics” arose in the 19th century, but it should be viewed that the origin of this idea came from the philosopher Plato. The ancient philosopher Plato, in his book The State (Politeia, 374 BC), said, “The best man should sleep with the best woman he can.” A child born in this way must be raised, but the child who did not do so, he insisted, “should be thrown away, and those with an incurable mental illness and those who are corrupt by nature should be killed.”
이 우생학적 생각은 인종차별의 근거가 되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인권이 탄압되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게르만 족만이 우월하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다’라고 믿고 ‘세상은 우월한 게르만 족이 지배해야 한다’며 결국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같은 소위 부적격한 인종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홀로코스트를 저질렀던 것이다.
This eugenic idea has been the basis for racism, and historically many human rights have been suppressed. During World War II Adolf Hitler of Germany believed that ‘Only Germanic people are superior and other peoples are inferior’ and ‘the world should be ruled by the superior Germanic people’. In the end, the Holocaust was the systematic killing of so-called ineligible races, such as Jews, Gypsies, homosexuals, and disabled people.
하지만 오늘날 우생학은 잘못된 학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백인문화권에선 흑인을 열등하게 보고 상당히 천시하였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인간의 생존에 있어 하얀색 피부보다는 인간이 항상 마주할 수밖에 없는 햇빛과 자외선에 더 뛰어난 저항성(멜라닌)을 가지는 흑색 피부가 훨씬 더 유리하다.
But eugenics nowadays is known to be a false doctrine. In the white culture, black people were viewed as inferior and quite despised, but in reality, black skin, with superior resistance to sunlight and ultraviolet rays (melanin) that humans always have to face, is far more advantageous than white skin for human survival.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역시 우생학을 선봉하였다. 1933년에 한국에 조선우생협회를 창립하면서 갖가지 범죄를 저질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나병환자에 대한 정책으로 조선의 나병환자들을 살아서는 나갈 수 없다는 소록도라는 섬에 격리시킨 것이다. 이들은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임신을 하게 되면 강제로 낙태시키고 남자들은 정관을 절제하여 나병환자들의 자녀가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심지어는 사산아들을 유리병에 담아 참혹한 장면을 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였다고 한다.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Japan was also at the forefront of eugenics. When Japan founded the Chosun Eugenics Association in Korea in 1933, it committed various crimes. A representative example was the policy on lepers, in which the then lepers in Korea were quarantined on an island called Sorokdo, where they could not leave the island alive. They settled here, and when they became pregnant, women were forced to have abortions and men had vasectomy, so that the children of lepers could no longer be born. They even put the stillborn babies in glass bottles and showed them the horrific scenes, warning them not to get pregnant anymore.
그런데 해방이 된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의 우생학정책을 그대로 이어 받아 소록도를 포함하여 전국의 나병환자 수용소에서 나병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고 심지어는 나병환자가 되기 전에 낳은 자식들까지 강제 분리시켜 고아원이나 시설로 보냈으며 이들은 일반학교에서 교육받지 못하도록 하였다. 물론 수용소에서 몰래 임신하여 출산일이 다가오는 임신부들의 경우 손발이 모두 갖춘 태아를 죽이고 사산하도록 하였으며, 그 아이를 임산부에게 직접 내다 버리도록 하였다.
However, after liberation, the Korean government took over Japan’s eugenics policy and continued to isolate and house lepers in leprosy camps across the country, including Sorokdo. Even children born before becoming lepers were forcibly segregated and sent to orphanages or facilities, and prevented from being educated in public schools. Of course, in the case of pregnant women who secretly became pregnant in the camp and their due date was approaching, the fetuses with all limbs were killed and the stillbirth was carried out. Furthermore, the pregnant woman was forced to throw the child away with her own hands.
이들의 애환은 2016.7.30자 한국의 SBS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잘 보도하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은 한번 시청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Their sorrow is well reported on SBS broadcast “I want to know that” on 30 July 2016, so I think it is worth watching for readers.
이러한 우생학을 법에 적용시키거나 정책에 반영시킨 것을 우생학법이라고 하는데 19세기 지구촌 국가들은 앞다투어 우생학을 자국의 법에 반영시켜 정책적으로 우생학을 시행하였다.
The application of such eugenics to law or reflected in policies is called the Eugenics Act. In the 19th century, countries around the world rushed to reflect eugenics in their laws and implemented it as a policy.
한 예로 1958년 미국에서는 워싱턴에서 결혼식을 올린 백인 남성 러빙과 흑인 여성 밀드레드 지터를 다른 인종과 백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어겼다며 체포하였고, 주 법원이 이 둘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하였다. 러빙은 버지니아 주 대법원에 항소하였고, 대법원은 1967.6월에 “주 법이 개인의 삶과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4조에 어긋난다”고 판결함에 따라 미국의 27개 주는 당시 인종을 차별하는 결혼관련법을 모두 바꾸어야 했다.
For example, in 1958 in the United States, a white man, Richard Loving, and a black woman, Mildred Jeter, were arrested in Washington for violating a law prohibiting interracial marriage and the state court sentenced them both to one year in prison. Loving appealed to the Virginia Supreme Court and in June 1967, the Supreme Court ruled that “state laws violate the 14th Amendment, which guarantees individual life and freedom,” and consequantly 27 states in the United States had to amend all the racially discriminatory marriage laws at the time.
미국은 또한 1924년도에 우생학 이론을 근거로 ‘단종법’을 만들어 1974년 이 법이 폐지되기 까지 50년간 약 6만 5천명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받은 수치스런 역사가 있다. 이 법의 첫 피해자는 샬럿츠빌의 캐리 벅이란 여성으로 어머니가 정신병자란 이유로 양부모 밑에서 자라다 17세때 조카에게 성폭행 당하여 임신했다. 하지만 양부모는 그녀를 생모가 있는 수용소로 보냈고 출산한 아이조차 빼앗겼다. 수용소 측은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에 따라 벅에 대한 거세수술을 시도했다. 이에 반대하여 법원에 호소하였지만, 1927년 대법원은 “3대에 걸친 저능아라면 이유가 충분하다”며 단종법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한다는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며 벅의 수술을 허용했다. 2차대전 종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전범들은 이 단종법을 판례로 인용하며 자신들의 유대인 학살정책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The United States also had a shameful history of forcibly sterilizing about 65,000 people for 50 years until the law was repealed in 1974 by enacting the ‘Sterilization Act’ based on the eugenics theory in 1924. The first victim of the law was a woman named Carrie Buck from Charlottesville. She grew up with adoptive parents because her mother was mentally ill, and when she was 17, she was raped by her nephew and became pregnant. However, her adoptive parents sent her to a camp where her birthmother was, and even the baby she gave birth to was taken away. The camps attempted to castrate Buck under Virginia’s Sterilization Act. Against this, Buck appealed to the court, but the Supreme Court in 1927 said, “If it is a child with three generations of disability, there is a good reason” and that the Sterilization Act “conforms with the constitutional spirit of pursuing the safety and welfare of the majority” and allowed Buck’s surgery. At the Nuremberg Trials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the Nazi war criminals cited this Sterilization Act as a precedent and defended their policy of genocide against the Jews.
버지니아주 의회는 2002년 벅 할머니에 대한 잘못을 뒤늦게 나마 시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4년뒤인 2006년에는 주 상원에 벅 할머니 성폭행범에 대해 거세형을 가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과오를 인정했지만 벅 할머니는 통한을 안고 이미 훨씬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다.
In 2002, the Virginia state legislature passed a resolution that belatedly admits wrongdoing to Buck. In 2006, four years later, the state admitted its mistake by submitting a bill to the State Senate to castrate the rapist of Buck, but the grandmother had already passed away long ago in pain.
Continued in Par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