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말하는 진정한 양심이란
2018년 6월 28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재)는 병역법 제5조 제1항(병역종류조항) 등에 대한 위헌소원 등 청구사건에서 위 병역종류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2016년 12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군 입대를 거부한 홍정훈이 1심 패소(2017년 4월) 뒤에 헌법소원을 낸 것에 대한 결정이었다.
병역종류조항에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시한 것이었다.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 중 하나로 규정하지 않음으로 동 조항이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그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사실 헌재는 2004년 8월 26일 병역법의 같은 조항에 대한 위헌재청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으나 그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도 2018년 11월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열어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때 대법원은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기본조건이자 민주주의 존립의 불가결한 전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양심은 개인의 소신에 따른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고 그 형성과 변경에 외부적 개입과 억압에 의한 강요가 있어서는 안 되는 윤리적 내심영역이며 양심에 따라 결정을 하는 내심의 자유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형성된 양심에 따른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된다”고 판시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존의 유죄 판례를 15년 만에 무죄로 변경한 것이었다.
그러나 2021년 3월 홍정훈의 상고가 기각되어 원심인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홍정훈의 양심이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병역을 거부한 사유가 권위주에 대한 거부감이지 홍정훈이 주장하는 비폭력·평화주의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입영영장을 받았을 때 곧 바로 병역거부를 하지 않고 징집을 연기하였고, 병역거부 를 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병역거부나 반전·평화운동을 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홍정훈의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일생을 살면서 한 순간의 흔들림도 없이 반전·평화주의를 외쳐왔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부분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한국의 재판부가 설정한 진정한 병역거부자의 기준은 예수나 석가모니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소속집단의 부조리에 가담했다가 뒤늦게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내부 고발하는 사람들의 양심은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지 않은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양심을 가졌다 해도 일순간 내면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이 있을 수 있고, 또 뒤늦은 깨달음으로 양심이 발현될 때도 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인도의 간디도 1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청년들에게 영국을 위해 나가 싸우라고 징집을 권유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은 진정성 한국 재판부의 기준으로 보면 진정성이 없다는 말이 된다.
대한민국의 특성에 따라 재판부가 일관성있게 병역거부자를 처벌해 왔다면 이런 토론은 의미가 없겠지만 적어도 법적으로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렸다면 재판부는 그 취지에 맞는 올바른 판결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므로 반전.평화주의자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원을 살펴보니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양심이 아니라 홍정훈의 반전·평화주의 양심이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부터 형성된 같은 맥락의 양심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또한 입영영장이 나왔을때 부터 병역거부를 하지 않고 오히려 연기를 한 것은, 군대에 가겠다는 양심이 아니라 군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양심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선택을 유예했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무하마드 알리는 1967년 미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양심을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었다. 그는 일평생 권투만 하였고 평화주의 운동을 한적은 없지만 미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이라는 계기로 인해 반전.평화운동의 양심이 발현되었던 것이다.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진정한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그의 생애 전반을 살펴볼 수는 있지만 과거를 잘게 쪼개 뒤지면서 현재의 양심과 모순 지점은 없는지 과도하게 감별한다면 예수나 석가모니도 그 기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