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유포죄
호주는 명예훼손죄를 형사범죄로 다루지 않는다. 때문에 민사소송에서 명예훼손으로 승소하면 그 배상액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금액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사람은 그 내용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면책을 받을 수 있다. 즉, 국가 기밀로 분류된 사실을 말하지 않는 한, 자신이 공표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처벌받거나 손해배상의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우스개소리로 어느 나라에서 “대통령은 바보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 실제로 이 나라 대통령이 바보여서 진실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자는 국가기밀누설죄로 처벌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UN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형법상 사실을 말하여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이 얼마전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헌법과 일치한다며 합헌 판결까지 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5대4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다.
-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려운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고,
-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이 아니며,
- ‘징벌적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렵고,
-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하는형법 제310조가 있으므로 이를 넓게 적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 외적 명예침해를 방치한다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숨기고 싶은 병력, 성적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침해위험성이 있고,
- 사적 제재수단으로 명예훼손을악용하는 것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헌재 다수의견은 결론 내렸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징벌적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합헌판결의 이유로 들었다는 점이다. 즉, 민사적 구제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어떤가?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보도하여 당사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 있음에도 언론 횡포에 의한 피해자에게는 별다른 구제수단이 없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언론을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나왔지만 그렇게 되면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여 언론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감시와 비판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기 때문에 형벌이 필요하고, 언론의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까 우려되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는 해괴한 딜레마를 초래한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경험을 공연히 말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오히려 고소를 당하여 처벌받고 있고, 과거 유명 언론사의 사주로 부터 성추행당했다는 사실을 말한 피해자는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여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감당하여야 하고, 광우병 우려를 보도한 방송프로그램의 PD와 제작진은 대한민국 농수산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전원구속까지 당한 바 있다. 모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근거로 한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부인하는 가해자의 거짓말은 인정하고 피해자의 진실 유포는 처벌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언젠가는 한국도 자유롭게 진실을 유포할 수 있을 때가 오리라. 우리는 그 때를 하염없이 기다려 보는 수 외에 다른 방안은 없을까? 모두 한번 고민해 볼일이다.